HOME    LOGIN    JOIN     SITEMAP

뵆옒떆 뵆젅씠뼱媛 꽕移섎릺吏 븡쑝硫 젣濡 옉룞븯吏 븡뒿땲떎. Adobe Flash Player

 
 

플래시 플레이어가 설치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Adobe Flash Player

 
 
HOME 유적과 문헌 유적유물


쌍성각(雙城閣)
[2019-07-09 17:24:06]



성력산성(聖歷山城, 보존급 제391호) :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의 삼사리 서쪽 성력산에 있는 옛 聖歷山城址,

성력산성은 1044년에 축성된 것으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에 “둘레가 2982자, 높이가 5자 되며 고을사람들이 진산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제49권에는 “읍돌성은 북의 서쪽 성력산에 있다. 둘레가 987보이고, 성 안에 군사창고와 우물 1개, 못 1개가 있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쌍성각/비(雙城閣/碑)

⇒39°33'03.5"N 127°13'41.7"E 주변

⇒H62H+97 금야읍 북서지역 삼사리 함경남도

   


[쌍성각(雙城閣)]

 

총관기년(摠管紀年) 669년이 되는 1926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시종원(侍從院) 부경(副卿)을 지낸 23세 정윤(鼎允)이 공(公)의 3대(代) 유허[遺墟:2세조 총관공(摠管公) 휘(暉), 3세조 부원수공(副元帥公) 양기(良琪), 4세조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돈(暾, 1308~1380)]인 영흥군 영흥읍 삼사리 성역산 아래에 쌍성각(雙城閣)과 비(碑)를 건립하고 함남 7개군의 유림(儒林) 대표이며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인 능곡(菱谷) 윤병헌(尹秉憲)이 쌍성각 유적비명(遺蹟碑銘)과 현판문(懸板文)을, 1927년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규장각(奎章閣)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 위당(爲堂) 인보(寅普)의 부(父)〕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와 지제고(知製誥)를 지낸 포산(苞山) 곽찬(郭璨)이 기문(記文)을, 23세 진사(進士) 일원〔一元, 양절공(良節公) 온(溫)의 17세손〕이 병송(倂頌)을, 정윤(鼎允)이 공(公)의 공덕을 칭송하고『고려사(高麗史)』의 모함을 변명하는 창건설(創建說)을 각각 썼다.

 

[쌍성비각(雙城碑閣)]

  칠백년유신공렬(七百年維新功烈)

 십이성혹구인민(二城惑舊人民) 

雙城摠管漢陽趙公暉遺蹟碑銘(쌍성총관한양조공휘유적비명)

    於戱我公 肇基于此 어희아공 조기우차

 七百年來 山高水流 칠백년래 산고수유



 凡在不忘 人必紀蹟 범재불망 인필기적



    아! 우리 공은 여기에 터를 창조하였지!


    7백년 동안 전하여 오도록 산만 높고 물만 흐르누나!

    잊을 수 없으면 사람들은 반드시 비석으로 사적을 기록하나니,

    從此瞻仰 雙城之閣 종차첨앙 쌍성지각

    文化聖壇 平壤箕殿 문화성단 평양기전

    一轍同婦 千秋萬年 일철동부 천추만년

    이로부터 바라보면서 우럴기를 쌍성각(雙城閣)일세!

   문화의 성단은 평양(平壤)의 기자전(箕子殿)이로다.

    이와 마찬가지인 결과로 돌아가니 천만년을 지탱하리라!





성력산성(聖歷山城, 보존급 제391호) :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의 삼사리 서쪽 성력산에 있는 옛 聖歷山城址,
성력산성은 1044년에 축성된 것으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에 “둘레가 2982자, 높이가 5자 되며 고을사람들이 진산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제49권에는 “읍돌성은 북의 서쪽 성력산에 있다. 둘레가 987보이고, 성 안에 군사창고와 우물 1개, 못 1개가 있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야객사(金野客舍) 군자루(君子樓)

⇒39°32'52.3"N 127°13'50.5"E

⇒G6XJ+47 금야군 금야읍 함경남도

 

 

 
유래 불천지위 국조문과방목 조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