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LOGIN    JOIN     SITEMAP

뵆옒떆 뵆젅씠뼱媛 꽕移섎릺吏 븡쑝硫 젣濡 옉룞븯吏 븡뒿땲떎. Adobe Flash Player

 
 

플래시 플레이어가 설치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Adobe Flash Player

 
 
HOME 유적과 문헌 유적유물


▣유명조선국통훈대부원주목사(原州牧使)조공 묘갈명 병서▣
[2019-04-29 19:51:11]


















有明朝鮮國通訓大夫原州牧使趙公墓碣銘竝書

▣유명조선국통훈대부원주목사(原州牧使)조공 묘갈명 병서▣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金貴榮讚幷書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겸영경연사감춘추관사찬병서

嘉善大夫行承政院都承旨兼經筵參贊官藝文館直提學尙瑞院正金應南篆

가선대부행승정원도승지겸경연참찬관예문관직제학상서원정금응남전

 

趙氏는 漢陽에서 비롯하여 비조(鼻祖)(七代祖)인 良琪가 十三세에 습직으로 高麗에 벼슬하여 쌍성총관(雙城總管)이 되었고 世祖때에 용맹과 지략으로 日本을 정벌하여 元나라에 들어가 부수(副帥)로서 합단병(哈丹兵)을 쳐부수고 포로를 바치니 황제가 금포옥대(錦布玉帶)를 하사하였다. 육대조인 諱 돈(暾)은 홍건적을 파하고 예의판서(禮儀判書)로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封하였고 오대조(五代祖)인 諱 인벽(仁璧)은 전공을 세워 三司左使에 걸쳐 용원부원군(龍源府院君)으로 시호는 양렬(襄烈)이시며 고조의 諱는 온(溫)인데 朝鮮의 開國功臣이 되어 한천부원군(漢川府院君)으로 책봉되었으며 시호는 양절(良節)이시다. 한천(漢川)이 의영고사(義盈庫使) 육(育)을 낳으니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중직되었고 참판이 (成均館司藝)충손(衷孫)을 낳으니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중직되었고 뒤에 예조판서에 중직 되었다. 판서가 원강(元綱)을 낳으니 벼슬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중직되었으니 이분이 公의 아버지이시다.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현감(縣監) 의(誼)의 딸이신데 성화(成化) 병오년 팔월 초팔일에 公을 낳으셨다. 公의 諱는 숭조(崇祖)이시고 字는 경숙(敬叔)이다. 어려서부터 무게가 있고 희롱하지 아니하고 나이 十五세에 부친喪을 當하시고 辛未年에 모친喪을 당(當)하심에 禮를 다하시고 모든 家風을 따르셨다. 蔭으로서 경기전참봉에 보임(補任)되시고 기묘년에 형님이신 정암(靜菴)선생께서 적지(謫地)에서 사약을 받으시니 곧 벼슬을 버리시고 통곡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염려하였으나 公은 불고(不顧)하고 드디어 가서 늘(시신을 감싼 나무판자)을 잡고 돌아오셨다. 벼슬이 전성사봉사장낙원, 직장사헌부감찰, 장예원사평, 한성판관(典性, , , ) 으로 昇進하시고 나아가서 光州判官이 되었다가 期限이 차서 돌아와서 장예원사의와 가산(嘉山)郡守로 봉직 중 病때문에 사직(辭職)하고 잠시동안 도총부경력상의첨정을 거쳐 숙천(肅川)과 平산 두 곳 府使로 재임시 平山의 巨豪들이 관곡(官穀)을 갚지 않고 도리어 公을 해코자 하여 公이 가장 惡한 놈을 가려내어 조정에 알려서 다스리게 하니 모든 토호(土豪)들이 굴복하였다 原州牧使로 昇進하여 在臨중 病으로 因하여 사직하고 여러 차례 천거되어 예빈사부정(禮賓寺副正)에 이르렀다. 己未(1559년)5월27일 卒하시니 亨年이 七十四歲이셨다 용인현 구흥리 묘좌 유향(酉向)에 장례를 모셨다 公이 外貌가 단정하고 嚴하시며 기국(器局)과 度量이 크고 굳세며 정암(靜菴)先生의 正義를 본받아서 집에서 우애하고 官에 있어서는 청렴하고 사람을 접대함에 조처(措處)가 각각(各各) 마땅함을 얻어서 벼슬이 三品에 오르셔도 지름길을 밟지 아니하여 四邑에 분부(吩咐)함에 아전과 백성(百姓)들이 그를 생각하였다 조정벼슬에 계신지 四十年에 家業을 經營하지아니하고 녹봉으로 취반(炊飯)하시니 돌아가신 날에 주머니에 쓸만한 物件이 없으셨다 配位는 淑人 상주김씨 牧使士元의 따님이시다 나면서 叔明하시고 女工에 精하시며 부지런하셔서 홀로 內政을 맡아보시는 데도 시뉘들이 합연이 틈 있는 말이 없으셨다 公보다 五年 뒤 卒하시니 향년이 칠십오세이다 公의 山所에 부쳐서 장례를 모셨다 四男四女를 낳으시니 長男은 進士 희윤(希尹)이요 二男은 監察 희설(希設)이요 三男은 현령(縣令) 희안(希顔)이요 四男은 縣監 희맹(希孟)이다. 長女는 가(嫁) 參奉 박홍의(朴弘毅) 二女는 嫁 송억수(宋億壽)三女는 嫁 生員 (정태형)鄭奉亨 四女는 嫁 김광제(金光濟)이고 長男 希尹은 生 인의(引儀 )忠男이요 二男 希說은 生 應男이요 三男 希顔은 生 二男二女로 준남(俊男), 순남(舜男)이요 長女는 嫁 이문현(李文顯) 이요 二女는 嫁 허등(許燈)이요 男 希孟은 生 四女로 長女는 嫁 장언침(張彦忱) 二女는 嫁 남익수 (南益壽) 三女는 嫁 進士 김흥우(金興宇) 四女는 嫁 이몽주(李夢柱)이고. 박홍의(朴弘毅) 生 경남(慶男). 경린(慶麟) 송억수(宋億壽) 生 二男 령(翎)과 상(翔)이요 長女 嫁 김대인(金大仁) 二女 嫁 承旨.성낙(成洛) 三女 嫁 正郞 柳根 정태형(鄭泰亨) 生 광준(光濬) 광한(光漢) 長女 嫁 남대우(南大佑) 二女 나정길(羅廷吉 김광제(金光濟) 生 長女 嫁 縣監 김비(金斐) 二女 嫁 최수경(崔守慶) 忠男 生 進士 爾瞻으로 內外孫이 八十餘人이니 子孫이 盛하기가 世上에 더불어 견줄이가 드물다 하였다 公의 아들이 나에게 碑銘을 청하니 나는 公의 부인이 나의 故母가 되므로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碑에 새기기를 德을 많이 쌓은 家門에 태어나 성장기에 언제나 반듯하였고 예의범절이 단정하며 삼가며 지키기를 굳게 하셨으며 처음으로 벼슬에 임해서는 열심히 근무하시니 아전들이 그 위엄(威嚴) 두려워하였고 백성들은 그 은혜 사랑하였네 의복을 격식에 맞춰 입으시고 가난을 보배로 여기시며 善하게 대응함이 가즈런하셨고 몸은 건강하게 편안함을 누리시며 壽命은 七十을 넘으셨다 아들과 子孫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진진(振振)하였다 좋은 배필만나 가정이루고 현명한 子孫낳아 부부생활 함께 하시며 무덤길도 함께 하셨네! 돌에 이를 기록하니 천년토록 보전하고 本 받으리라!

 

皇明 萬歷十五年(一五八六年)十月 日立

譯 月何 趙成達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 1520~1593)

墓所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구룡리 산53-1번지

◉두암(斗巖) 김응남(金應南, 1546~1598)


 

 

 
유래 불천지위 국조문과방목 조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