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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대도유사(대종회장)부경공조정윤
2대 도유사(대종회장) 부경공 정윤
[2008-06-16 02:19:50]

양절공 참판공파, 증 가선대부 협변공 종진(鍾軫)의 아들, 자는 구열(九列), 갑인년에 태어나시고 벼슬길에 올라 여러 군읍을 다스리셨으며 서북감리를 거쳐 고종때 가선대부 시종원부경(현재 청와대 대통령실 수석)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공의 부친과 조부, 증조부 3대에게 벼슬을 추증하였습니다.

 부경공께서는 나라 일을 하시는 한편 종사에 길이 빛나는 여러가지 공헌을 특출나게 하셨기에 한양조씨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1) 갑자팔권보(甲子八券譜) 발간

 뿌리가 다른 소위 판도공파가 우리 한양조씨 문중에 편입코자 1,807년 정묘위조보를 발간, 우리 문중에서 각 파와 각 지방 문중 대표가 예조(조정)에 총궐기하여 조정에서 폐보처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이와 같은 만행을 자행하여 1921년 신유위조보를 만들어 배포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문중에서는 경성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 승소하여 이 족보를 폐보처리하였습니다.

 부경공은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정통갱보를 추진하셨으니 신유위조보 폐보 사건 3년후인 1924년 2세조 총관공 묘소에서 한양조씨 대회를 개최하였는 바 전국 각 파와 각 지방에서 문중 대표 1,000명이 참석,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서울 도성도 아니고 총관공 묘소가 계신 궁벽진 시골 함경남도 덕원군, 그 당시 교통수단도 변변치 못하던 시절에 종인 1,000명이 모였다는 것은 종통수호에 선조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새로 발간하는 족보는 옛 범례를 확실히 따르겠다고 총관공 묘소에 고하고 발간하였는데 신유위조보를 정통족보인줄 잘못 알고 거기에 족보대금을 낸 종인들의 부담을 고려하여 부경공께서 비용을 단독 부담하고 서문을 쓰셨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아! 5,6 년 전 기미년(己未,1911)에 기호(畿湖) 지방의 어느 파(派)가 서울 관수동(觀水洞)에 족보 속간(續刊)을 위한 보소(譜所)를 설치하고는 판도공(版圖公)을 종손(宗孫)으로 기록하고 말았는데, 우리의 여섯 번에 걸친 족보의 총관공 계통(系統)은 어디에 있는가!
 (중략)
경고문과 광고문을 통하여 온 나라에 성명(聲明)하였는데, 동으로는 강릉(江陵), 서로는 용만(龍彎), 북으로는 단천(端川), 남으로는 강진(康津)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부터 모여든 사람이 1000여명이었다. 영흥(永興) 총관공(摠管公) 묘 앞에서 대회(大會)를 열고 ‘새로 만드는 정통족보는 옛 범례(凡例)를 확실히 따르겠습니다.’ 라고 총관공(摠管公)께 고하였다.
 이렇게 되자 춘추대의(春秋大義)가 환하게 다시 빛을 발하였다. 이 때가 임술년(壬戌,1922) 5월 2일이었다. 의안(議案)을 결정하고 임원(任員)을 선정하였으며 서울 수하동(水下洞)에 보소(譜所)를 설치하였다. 각 파에서는 수단(收單)을 제출하고 한결같이 기유보(己酉譜)와 갑신보(甲申譜)를 따랐으며 근거 없는 자(영흥조씨들과 철원조씨들)는 등재(登載)시키지 않았다.

(중략)

 저들 관수동(觀水洞) 몇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총관공의 후손들인데 어찌 그들 본심(本心)으로 그렇게 하려 했겠는가? 모두가 시운(時運) 탓이로다! 하는 일 없이 배회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들이라도 우리 조종(祖宗)께서 그들을 볼 때는 다 같은 자손이다. 바라건대 족보에 함께 들어 있는 사람들은 화합에 힘쓰고 한 사람이라도 떨어져 나가 남 보듯 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번 우리의 정통족보(正統族譜)는 태양처럼 밝고 옥(玉)처럼 깨끗하여 조상을 욕 뵈지 않았다고 후세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족보에 함께 들어 있는 사람들은, 풀어 놓으면 온 나라를 가득 채우고, 모으면 한 집안에 오손 도손 모여서, 국가에 등용되면 공을 세워 업적을 쌓고, 집안에 있게 되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

(중략)

족보가 완성되었지만 외람되이 한마디 축원하고자 한다. 문절공(文節公) 단권보(單卷譜)는 ‘수많은 우리 족속(族屬)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한 사람의 몸이니 멀면 멀수록 더욱 더 잊을 수 없다. 같은 족보 사람들이 위로는 자기가 유래한 근원(根源)을 알고 아래로는 전해 내려온 계파(系派)를 확실히 한다면, 장구한 세월이 흐른다 해도 문란(紊亂)이 없게 된다.  이것이 내가 나를 낳은 조상을 숭상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이를 세상이 다하도록 끌고 가려는 이유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문간공(文簡公) 삼권보(三卷譜) 서문(序文)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황악(黃渥)은 족보를 잃어버리자 정견(庭堅)을 억지로 끌어당겨 형제가 되었고, 나위(羅威)는 나은(羅隱)에게 뇌물을 보내 숙부(叔父)라고 불렀는데, 그 사이에 낀다한들 붙어 있는 밭도 흑백을 구분할 수 있거늘 음양의 확연함과 다를 것인가? 내가 이를 걱정하여 동지(同志)들과 함께 족보를 다시 편수(編修)하고자 하는데 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위에서 본바와 같이 문절공(文節公)과 문간공(文簡公)이 단권보(單卷譜)와 삼권보(三卷譜)로써 후세에 권하고자 한 것은 (족보를 제대로 만들라는 것을) 거듭 거듭 자세히 말한 것뿐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의리 없는 무리들이 오히려 족보 속간(續刊)을 이유로 사정(私情)을 끼고 돌아 영리를 취하려 한다면, 그들은 무슨 면목으로 종친들을 향하여 주장을 세울 것이며, 무슨 면목으로, 죽어 황천(黃泉)의 조상을 뵈올 것인가? 바라건대 우리 족보의 연로자(年老者)와 자제들은 이를 따라 선조의 유훈 실천에 더욱 힘쓰라!

 

(2) 병인일통세보(丙寅一統世譜) 발간

 갑자팔권보 편수 2년 후인 1926년 보책의 숫자가 많아 이를 간수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보관과 휴대하기가 수월하도록 방주를 제거하고 오직 계대만을 적어 발간한 족보로서 부경공께서 발간에 필요한 비용을 단독 부담하고 서문을 썼습니다(병인일통세보 한양조씨대종회 보관)

 

(3) 쌍성각 창건 및 쌍성유적비 건립

  

 2세조 총관공의 유적을 길이 보존코자 쌍성총관부가 있던 함남 영흥에 부경공께서 종인들과 협의하여 단독 부담으로 쌍성각을 창건하고 유적비를 세웠는데, 함남 유림대표 성균관 박사 윤병현이 유적비문과 현판문을 짓고, 규장각 부제학 정만조와 홍문관 교리 곽찬은 기(記)를 지었으며, 후손 진사 일원(一元, 대종회 3대 도유사)은 서(序)를 짓고, 쌍성각 창건설은 부경공이 썼습니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 9-2

⇒한양조씨 23세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공 조정윤(趙鼎允) 묘소

⇒한양조씨 24세 [趙廣河,1907.9.19~1967.4.25]묘소


 

 부경공은 2자를 두었는데 장자 병희는 주사이고, 차자는 병갑이며 손자는 대하, 제하, 광하(이공학박사, 성균관대 총장), 중하, 일하, 강하, 도하이며 증손은 많아서 기록하지 않습니다.

 

 무릇 재물은 모아졌다가도 언제가는 흩어집니다. 후손들에게 재물을 남기는 것 보다 조상님들께서 이어오신 족보를 속간하여 후손들에게 뿌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정신세계를 이어주고, 쌍성각 등 조상님의 유적을 창건하시고 길이 보존하게 하신 부경공의 위대하신 정신은 동서고금에 보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 문중은 아직도 전쟁중이며, 유적은 정비할 것이 즐비합니다. 뿌리가 다른자들이 우리 문중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망상을 아직도 버리지 않았으며, 또 그들을 지원해 주는 우리 종인들이 일부 있습니다. 유적 부문은 시조 중서공의 재실은 현대식으로 지어져 전국에서 오신 종인들이 편안하게 식사와 담소를 나눌 공간은 됩니다만 옛 전통의 한옥 기와지붕의 재실이 없어 명문 한양조씨의 체면이 손상되고 있으며, 양절공 부조묘 사우가 없어 시조 재실을 빌려 사용하는 실정에 있습니다.

 또한, 2005년 양양산불로 소실된 동명서원을 복원하지 못해 임시로 강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어 조상님 뵙기 송구스럽고 유림과 자라나는 청소년들 보기 민망스럽기 까지 합니다.

 시조이하 5세조의 단소는 일형, 재형 형제분의 거금과 십시일반 종인들의 성금으로 완공하여 제향을 받들고 있으나, 나머지 숙원사업을 해결할 제2의 부경공은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지요?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을 숙제로 남기고 삼가 지하에 계신 부경공의 명복을 빕니다.




 

 

 

 

 
유래 불천지위 국조문과방목 조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