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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의 ‘남덕정’과 법천가든『공안공파』후손들
[2020-02-28 08:46:25]



●■전남 무안의 ‘남덕정’과 법천가든『공안공파』후손들,,,,

등록일2020-02-26


전남 무안의 ‘남덕정’과 『공안공파』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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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암(丹菴) 조위(趙位 1505∼1594, 13세, 공안공파)는 한양에 살다가 아버지 조근선(趙近善)이 1519년 기묘사화 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구명에 참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을사사화(己卯士禍 1519, 중종 14)로 유배당하자 벼슬을 등지고 조위 兄弟 분이 입향조로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죽전부락)에 ‘남덕정(覽德亭)’ 이란 정자를 세우고 주경야독 하면서 현재까지 자손을 번성한 마을로 이어져 오고 있다.


 <남덕정이란 봉황의 모습을 보며 덕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1635년 집의(執義), 문천군수, 군기시정을 거쳐 호남지방의 암행어사. 1643년 통신부사(通信副使) 임명으로 일본에 다녀온 외교관이며 뒤 형조참의 · 전주부윤 1645년에 이조참의가 되고, 대제학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때 이도(吏道)를 쇄신, 관리 등용의 공정을 기해 명망을 얻어서 청백리에 녹선되고, 글씨도 명필이었던 문간공(文簡公) 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 ~ 1669)이 ‘남덕정’에 올라 그 감회를 나타내는 시가 남아 있다.


主人覧德鳳亭山 千仭飛翔高商風 昑咏斯間淸趣足 滿園修竹堹庭桐

주인람덕봉정산 천인비상고상풍 금영사간청취족 만원수죽종정동

(주인의 남덕정이 봉정산(鳳亭山)에 있어 천길 /나는 봉의 날개에 높고 아름다운 바람이다.이 사이에 시 읊어 맑은 취미 만족하니/뜰에 가득한 아름다운 대나무가 오동 꽃 같네.)

 


조위는 밀양박(밀양박씨) 딸을 맞았으며, 동생 조위세(趙位世)는 문화유(文化柳)씨 딸을 맞아 살면서 마을을 이루어 일대에는 한양조씨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마을의 당산나무인 팽나무, 느티나무는 그때 심은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물질이 정신세계를 압도해 버린 우리네 삶의 터에서 정재각이 해야 할 역활이 시급하다. 일제강점때 정재각이 가장 많이 지어진 이유가 이와 같다.

이러한 세태를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문하에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하여 학문에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고려가 망하고 조선 개국 후 태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절개를 지키고 나가지 않았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은 아는지 모른지 여강에서 정처없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그가 부럽다.

천지는 끝없고 인생은 유한(有限)하니/호연(浩然)히 돌아갈 마음 어디로 가야하나.
여강 한 구비 산은 마치 그림 같아 /  반(半)은 그림인 듯 반(半)은 시인 듯하구나
天地無涯生有涯 浩然歸志欲何之 驪江一曲山如畵 半似丹靑半似詩

천지무애생유애 호연귀지욕하지 려강일곡산여화 반사단청반사시



한양조씨 恭安公派 조위의 자손으로 大宗會 理事인 병주와 고조부인 창진(昌震) 세형 兄弟가 강원도 평창군수와 수문장사과 벼슬을 하였고, 현재에도 대종회와 공안공파 발전을 위해??? 叛종문회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