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유물

home HOME > 유적과문헌 > 유적유물


趙鼎允 義務損財技錄(조정윤 의무손재기록)
[2017-04-30 21:53:53]









趙鼎允 義務損財技錄(조정윤 의무손재기록)


1854~1940


조정윤(趙鼎允) : 1854년 生 ~1940년 卒. 漢陽 趙氏.


1880년에 군읍관리로 시작하여 1882년에 광무주사(鑛務主事)로 근무했다. 1895년 장진군수를 시작으로 성천군수,태천군수를 두루 역임하고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인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에 이르렀다. 대한제국 시절에 금광 사업으로 함경도 제1의 거부이기도 하며, 장진군의 中東학교와 성천군의 東明학교, 경성 五星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1896년(丙申年)부터 많은 기부를 하였는데  


1896년부터 1906년(丙午年)까지 葉錢으로 이십육만사천백삼십이兩을 여러 곳에 기부하였고


1907년(丁未年)부터 1926(丙寅年)까지 구만오천이백팔십이円을 여러 곳에 매년 기부하였다. 


(참고로 1912년의 80kg 쌀 한가마니 가격은 5원 정도)


                 


우연히 입수하게된 "趙鼎允義務損財技錄"을 토대로 1906년 한해의 기부내역을 기재하여 본다.




"平壤 국민학교 삼천냥, 京城 국민학교 이만냥, 安州 국민학교 삼백냥,价川 국민학교 오백냥, 博川 국민학교 오백냥, 嘉山 국민학교 오백냥, 德川 국민학교 삼백냥,江東 국민학교 삼백냥, 順安 국민학교 삼백냥, 長津 국민학교 일천냥, 龍川 국민학교 천냥, 雲山 국민학교 오백냥, 江界 국민학교 오백냥" 등을 1906년 한해에 기부하였다.(당시엔 소학교였겠만 기록 당시인 일제강점기식)




이와같이 매년 여러곳에 기부를 하였는데 교육기관에 기부한 목록이 제일 많다.




이 "趙鼎允義務損財抄錄"은 뒷장에 5인의 도장이 있는것으로 보아 다섯명이 한부씩 갖고 있었는데 그중 한분의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작성시기는 기부의 끝자락인 1926년 이후인 1927년 정도(낡은 정도로 보아도)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