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유물

home HOME > 유적과문헌 > 유적유물


죽수서원(전남화순)
[2011-04-13 09:26:47]




 ▣죽수서원(竹樹書院)▣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배향(配享)=


 


※전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산15-3번지
※지정 : 전남 도지정문화재자료 제130호


 


전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산15-3번지에 위치한 죽수서원은 1519(중종14)년 기묘사화(己卯士禍)시 조광조선생의 일파로 몰려 삭직낙향(削職落鄕)하였던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선생이 사사(賜死)당했던 조광조 선생의 시신을 염습하여 現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의 중조산 골짜기(조대감골)에 아들로 하여금 암매장 하게 한 다음, 이듬해인 1520년에 경기도 용인의 선영하에 반구하고 그 자리에 사당을 건립, 제자들과 매년 춘추로 찬양한 것이 죽수서원의 효시이며, 그 후 조광조선생이 타계하신지 26년만에 태학생 박겸(朴謙)등이 상소하여 무고하게 돌라가심이 확인되여 신원(伸寃)끝에 관작이
회복되고, 1569(선조2)년 대사간 백석걸(白石傑)의 주장과 이퇴계의 조언으로 문정공(文正公)의 시호가 내려짐과 동시에 부조典(不조典)를 하사 하였다.


 


①1570(선조3)년 조정의 명에 의하여 사당(竹樹書院)을 선생의 적려사사지(謫廬賜死址) 근처인
현 유지(遺址)로 이건하고 이어 죽수서원의 사액을 내림과 선생의 단독서원으로 춘추향사를 모시게 되었다.
②1610(광해군2)년 전라감사 박승종(朴承宗)이 서원의 옆에 있는 대를 천일대(天日臺)라 이름 짖고 기록을 남겼다.
③1613(광해군5)년 재화를 입어 당시의 영암군수 현주공 조찬한(趙纘韓)이 중수하고 기록을 남겼다.
④1630(인조8)년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주장으로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선생을 같이 배향하였다.
⑤1868(고종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을 폐쇄하였다.
⑥1910(소화1)년에 학포선생의 후손인 양재경(양재경)이 준학 송병순(송병순)의 글과 안격(안격)의 글씨로 죽수서원지(죽수서원지) 추모비(추모비)을 세움과 동시에 입암석(입암석)에 죽수서원지의 각자를 새겨 남겼다.
⑦광복후 1971년 능주의 유림과 학포선생 후손들의 주관으로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원하였다.
⑧1983년 4월 서원원지인 모산리 산15-3번지의 10,131평을 한양조씨 후손들(당시 전라광주종친회 회장 월봉 조동희 화백, 아산 조방원 화백, 전남도경국장 조종석, 조일형님 등)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1971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복원한 서원을 해체, 現原址로 이건하였다.
⑨동년 서원원지 1,000여평의 부지중에 600여평을 2단으로 정리하여 신전(神展:天日祠), 내외삼문(照丹門, 高景樓), 강당(精潤堂), 동재, 묘정비, 홍살문 등을 완공하고 진입로 약800M를 확포장 하였다.
⑩1991년 4월 25일 전국 유림과 한양조씨 후손들이 참여한 가운데 위패 봉안식을 끝내고, 매년 음력 3월 15일 안정일로 정하여 춘향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