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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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총관공 휘

시조 중서공 휘 지수의 독자로 태어나시어 고려 고종 45년(1258) 원(몽고)의 쌍성총관부 초대 쌍성총관에 제수되셨다.
이후 공의 증손자까지 99년간 총관을 세습하여 12개성을 통치하셨으며,1273년 돌아가셨다.
묘는 함남 덕원군 북성면 신안리이다.묘소앞에 사계화가 있어 우리 가문의 상징이 되고있다(사계화 그림참조)
1926년 가선대부 부경(종2품 벼슬로 현재 차관급임)을 지낸 정윤(참판공파)공이쌍성각을 창건하였다.
독자를 두시니 부원수공 휘 양기이다.
*총관은 현재 총독과 같으며,호주,캐나다,홍콩이 이에 해당됨.
  

❀2세조 총관공摠管公(휘 휘暉, 생졸년 미상)❀

쌍성총관 4대 99년간 세습

시조공의 獨子이다. 1258년(고종 45년) 쌍성총관雙城摠管을 지냈고 삼중대광은청광록대부三重大匡銀靑光祿大夫에 올랐다.

쌍성총관은 휘暉-양기良琪-림琳-소생小生까지 4대 99년간 세습되었다. 배위에 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고 1자1녀를 두었다.

서천군西天君 정곤수鄭崑壽의 기록, 무송茂松 윤소종尹紹宗의 용성군전龍城君傳, 홍주이씨세보洪州李氏世譜에 의하면 1녀는 태자太子 첨사詹事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문강공文剛公의 아들 홍주인洪州人 이천소李倩笑와 혼인하였다.

1677년(숙종 3년) 송천공松泉公(14세 휘 위명威明, 문간공의 조카, 예조 참판)이 왕명을 받들어 북도北道의 모든 능소陵所를 봉심奉審할 때 묘비가 파손된 것을 발견하여 문중에 처음 알렸고, 1683년(숙종 9년) 양절공파의 충의忠義 세흥世興이 내외손들과 연명으로 장계狀啓를 올리고 와서 옮겼다. 1687년(숙종 13년) 후손 회양 군수 종저鍾箸와 외손 안변 부사 심수량沈壽亮이 비석을 다시 세웠다. 1819년(순조 19년) 다시 고치고 쌍성총관한양조휘지묘雙城摠管漢陽趙暉之墓라고 비를 세웠다.


쌍성각

총관기년摠管紀年 669년이 되는 1926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시종원侍從院 부경副卿을 지낸 23세 정윤鼎允이 공의 3대 유허遺墟인 함남 영흥군 영흥읍 삼사리 성역산 아래에 쌍성각雙城閣과 비를 건립하고 함남 7개군의 유림儒林 대표이며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인 능곡菱谷 윤병헌尹秉憲이 쌍성각 유적비명遺蹟碑銘과 현판문懸板文을, 1927년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규장각奎章閣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위당爲堂 인보寅普의 부父)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지제고知製誥를 지낸 포산苞山 곽찬郭璨이 기문記文을, 23세 진사進士 일원一元(양절공良節公의 17세손)이 병송並頌을, 정윤鼎允이 공의 공덕을 칭송하고『고려사高麗史』의 모함을 해명하는 창건설刱建說을 각각 썼다.




[丁巳年(1917) 양절공파보 편수시(首編山圖)에 실린 四季花圖]


조형원(趙亨元)화(畵) 부경공(副卿公)조종서(趙鍾緖)찬(撰)




[丁巳年(1917) 양절공파보 편수시(首編山圖)에 실린 四季花圖]



四季花贊

빛나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나뭇가지가 이 뫼앞에 났구려.

빨간꽃과 파란 잎의 그 무늬가 찬란도 하여라!

땅의 은혜 홀로 받아서 사철의 화기 갖추었구려.

가을에는 국화의 아름다움과 이웃이 되고 봄에는 복사꽃 바짝 따르네.

더워지면 연꽃보다 먼저 피고, 섣달에는 매화보다 앞이로세!

여러꽃의 미를 다 가졌으면서 외로운 절개 더욱 굳구나.

명을 받자와 여기 있으니 한번 먹은 마음 옮길 수 있을손가?

반짝이며 빛나는 붉은 마음 길이 섬돌에 향했을 뿐....

이름난 동산이 없을까마는 심어 봤자 헛 수고더라!

누가 식물은 정이 없다 하던가 먹은 마음 돌보다 더 단단하여라.

귤더러 강남의 진과라던가 강북에 오면 탱자됨이 부꾸러워라!

난초는 향기의 으뜸이기는 하나중간에 그 향기 변경된다네.

화초마다 재주를 자랑하지만 누가 감히 견주리.

저 달속의 계수나무 만고에 한뿌리라니.

이 말이 참이라면 서로 한번 견주어 봄직하다.

땅덩어리 아무리 변하더라도 밝은 빛은 날로 짙어만 가누나.

화한 기운 쌍고 또 쌍아 상서로운 터전을 보호하고 도우리.

일천가지 같은 뿌리이고 가지마다 또 천개의 꽃봉우리로세.

마치 우리 조상의 자손 많은 것 같구려.

기고는 또 맺어 수시로 꽃 피누나.

원대의 후손 있듯이 백대의 영화로세.

아! 이는 참으로 우리 가문의 보배로운 나무일세.

무엇으로 표창하리 그림 그려 붙여 놓으리.

어떻게 칭찬하리 읊고 노래해 주세.

마음속으로 좋아하니 더욱 어찌 잊을손가!

후래의 많은 자손들아! 게을리 말고 삼가 일 잘하라!

꽃뿐만 아니라, 선영을 비호해 줌이로다.

丁巳(1917年)九月

副卿公諱鍾緖(文正公十二代孫)




사계화

공의 묘 앞에 있는 나무로 우거져서 숲을 이루었는데 늘 사계절의 끝 달에 꽃을 피워 번성하면서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문득 시들어 죽고 피지 않는다. 이 꽃은 흡사 충신, 열녀와 같이 절개를 변치 않고 선영을 호위하는 뜻을 표하고 있어 정표旌表의 예禮로 특히 派譜파보에까지 사계화도四季花圖를 후손 형원亨元이 1917년 그려 넣고, 부경副卿 종서鍾緖(1859-1921, 문정공文正公 정암靜菴의 12세손)가 찬贊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