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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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옥천공 덕린

16세 옥천공 휘 덕린 


양경공파
자는 택인,호는 옥천.
169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교리,사간,필선 등을 역임하시고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경상도 호소사가 되셨으며,난이 평정된 후 동부승지에 올랐다.
1736년 서원의 남설을 반대하는 상소를 하셨다가 노론의 탄핵으로 제주에 귀양가시던중 강진에서 돌아가셨다.
저서로는 옥천집이있다 

 

조정에서 간관(諫官)의 직책을 제수하고 국가를 위한 충언을 구하는 교지까지 내렸다. 이에 공은 다음과 같은 10가지 조목이 담긴 상소문을 올렸다.

 

첫째, 성인의 학문(聖學)을 밝혀 마음을 바르게 하소서.

배움이란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것이며, 사람의 도리에는 부자(父子)·군신(君臣)·형제(兄弟)와 같은 커다란 인륜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 당연한 법칙을 극진히 하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온전히 해야 합니다. 그것을 추호의 거짓됨 없이 몸소 체득하고 마음에서 진실로 얻은 다음에야, 학문은 밝아질 것이고 마음은 바르게 될 것입니다. 성인들께서 그 처음 시작하는 곳을 지적해 주셨고 또한 공부하는 방법도 일러주셨으니, 『맹자(孟子)』에 나오는 사단(四端)이나 야기(夜氣)에 관한 설명들이 바로 그런 것이옵니다. 심성의 본연한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고 밤낮으로 행위하는 것들을 점검하시게 되면, 잘 따르시고 어기시는 사이에 분명 흐뭇한 희열과 두려운 후회가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진실한 덕을 닦아 하늘의 뜻에 부응하소서.

무릇 하늘은 저 높은 곳에 있지만 일기(一氣)는 유행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요즘 천문 현상이 어긋나고 재앙이 거듭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혹여 전하께서 평소 닦으시는 것들이 화려한 문장에 있고 진실한 덕에 관해서는 미흡하여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무릇 재앙이 나서 거처를 옮기시게 된 것은 모두 화려한 문장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오직 엄숙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운 자세로 자신을 반성하고 덕을 닦으소서. 전하께서 지극히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면 마치 메아리와 같이 감응하는 법이옵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덕을 닦으실 때에도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셋째, 인재를 정밀하게 선발하여 정사를 바로 세우소서.

요·순(堯·舜)시대나 주()와 같은 융성한 나라도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탄식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와 같이 좁고 작은 나라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당론(黨論)으로 인해 마치 두 개의 나라처럼 피차를 나누어 화합하지 못하고 공정하지도 못한 상황이 이미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요즘은 당론이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으로 나뉘어, 인재인지 아닌지를 묻기 전에 먼저 물색(物色)을 따집니다. 이래서야 어진 인재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으며, 정사는 무슨 수로 바로 서겠습니까?

 

넷째, 뭇 백성들을 보호함으로써 근본을 튼튼히 하소서.

대저 임금이 백성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깨우쳐 줄 수도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어루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교화를 베푸는 신하가 있어야 임금의 덕과 의중을 백성들에게 펼치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백성을 친애해야 할 수령의 지위를 가진 관리가 올바른 인재가 아니라면 백성들이 그 재앙을 감내해야 합니다. 오늘날 수령이란 자들은 대개 나이 어리고 철없는 부호가의 도련님들로서, 사치스럽고 교만할 줄만 알았지 백성들의 가렵고 아픈 곳은 전혀 살피려 들지 않습니다. 세금을 징수함에 백성들을 못살게 다그치고, 간활한 아전들과 죽이 맞아 갖은 간악한 짓을 일삼습니다. 그리하여 나라의 원기(元氣)가 시들고 근본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 그들을 내치도록 방백(方伯)들에게 명하셔도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어사(御史)를 보내 감찰하게 하셔도 그 또한 여의치 않습니다. 이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 근본을 맑게 하지 않고 말단만을 다스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재용을 아껴 낭비를 줄이소서.

국가는 사방으로부터 수많은 세금이 걷혀 조달됩니다. 그러나 근년에 흉년이 들어 조세가 줄어들자, 탁지부(度支部)가 운영하는 재정은 부끄럽게도 고갈되어 가고, 군영에 비축되어 있는 군량 또한 모두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새나가는 재물은 흐르는 물보다 심하고, 낭비되는 돈은 쓸모없는 흙보다도 천합니다.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려 해도 그럴 수 없으니 이는 제도가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재정의 사용을 미리 절제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천승(千乘)의 나라가 가난을 걱정한단 말입니까?

 

여섯째, 군영을 튼실해지도록 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소서.

국가가 지난 백여 년 동안 전쟁 없는 안정기를 지내다보니 변방의 군기가 해이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수를 선발하는 것을 경시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소홀합니다. 군적에 올라 있는 병사는 모두 거짓으로서 태반이 어린 아이들 뿐이고 병기들은 구색만 갖추었을 뿐 거의 나무 몽둥이에 불과합니다. 병무를 담당하는 자들은 군사를 보충하고 병기를 수선하려 들지 않고, 병사들은 상관을 친애하여 그를 위해 죽을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장수와 병사들과 병기를 가지고는 적군과 맞서기도 전에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신의 망녕된 생각으로는, 장수를 간택하여 그에게 전권을 맡기시고, 백성들을 보호하여 그 마음을 얻은 후에야 군대에 관한 정무가 바로 될 것입니다.

 

일곱째, 모든 옥사를 신중히 하여 형벌을 아끼소서.

성인의 마음이 본래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죽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만 죄가 있는 사람을 그냥 놓아줄 수 없기에 순()임금은 사흉(四凶)의 죄를 물으셨고 공자(孔子)는 소정묘(少正卯)를 주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을 쓰는데 있어 공경하고 긍휼하여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은 그 속에 담겨 있었으니, 어찌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의도가 개입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즉위 초에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고 그 와중에 옥사 또한 많았습니다. 그처럼 뒤엉킨 난국을 전하께서 지극히 공명정대하게 해결하셨기에, 효제(孝悌)의 도는 신명에 통하고 호생(好生)하는 덕은 민심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란 놓아버리기는 쉽고 다시 잡아두기는 어려우며 요동하기는 쉽고 제어하기는 어려운 법이니, 엎드려 원하건대 더욱 힘써 주소서.

 

여덟째, 기강을 바로 세워 풍속을 다잡으소서.

임금이란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고 땅을 어머니로 섬기며 문무백관을 통솔하여 만백성을 다스리는 분이니, 어찌 하루라도 기강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의 세태를 가만히 관찰해 보면 지극히도 기강이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국사에 온 정력을 다 바치지만, 백관들은 아래에서 자신의 직무에 태만하옵니다. ()을 세우고 붕()을 나누어 현명한 인재와 불초한 사람이 뒤섞여 관직에 나오고, 서로 이기고 빼앗으려고만 하다 보니 시비가 혼란스럽습니다. 혹은 임금의 총애를 믿고 임금을 업신여기고, 혹은 임금의 권위를 깎고 경시하기까지 합니다. 전하께서 천위(天位)에 높이 계시니 위엄과 복록이 전하에게로부터 나오고 당기고 놓는 힘이 전하의 손에 있사온데, 어찌 기강을 바로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슬퍼하고 번뇌하기만 합니까?

 

아홉째, 공도(公道)를 회복하여 사사로움을 멸하소서.

()임금과 우()임금께서 천하를 물려받는데 어느 누구도 간여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한 덕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세의 어리석고 용렬한 군주들은 사심(私心)을 이기지 못하여 아첨하며 접근하는 간신들을 자기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지만, 결국 그들의 능멸과 협박으로 인해 혼란과 멸망을 당하게 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숙종(肅宗)대왕의 친자이시고 선왕이신 경종(景宗)대왕의 아우로서 임금의 자리에는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선왕께서 즉위하신 첫 해에 즉시 왕명을 내려 인재를 발굴하라 부탁하시는 등 사랑이 지극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왕께서 갑자기 붕어하시자 전하께서는 눈물을 훔치며 왕위에 올랐습니다. 드디어 온갖 국사를 맡아 집행하시되 모든 일이 지극히 공정하여 사사로운 공로에는 상을 주지 않으셨고 사사로운 분노는 개입시키지 않았으니, 순임금과 우임금의 그것과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당고(黨錮)의 악습이 날로 심해져서 서로 원수가 되어 죽이기를 일삼으니, 전하께서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임용한다 하더라도 작은 나라가 한쪽으로 축소되고, 인재 역시 한편의 사람들만 등용하게 될 것입니다.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博施濟衆)한다’는 전하의 정치는 이미 병들고 있는데, 전하의 마음은 도리어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하는 데 안주하고 계십니다. 하늘도 다 덮지 못하는 것이 있고 해와 달도 모두 비추지 못하는 골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하늘과 땅에 있어 가장 큰 유감입니다.

 

열째, ()과 실()을 바로 하여 기준을 세우소서.

‘명()은 실()의 객체’라고 들었습니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실()은 명()의 주체일 것입니다. 군주의 인자함과 신하의 충성, 부모의 자애로움과 자식의 효도, 형의 우애와 아우의 공손 등이 모두 실()입니다. 천하의 명실이 바르게 되면 만사가 순리대로 되는 법입니다. 만일 명이 실에 부합하지 않고 실이 명에 합당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이른바 ‘진실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다’(不誠無物)는 것입니다. 이 영향으로 허위와 사기를 조장하는 풍습이 점점 늘어나, 결국 나라는 그 나라일 수 없고 사람은 그 사람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 임금으로서 더욱 명실을 바르게 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마땅할 것이니, 어찌 명이 실과 어긋나고 실이 명과 달라서야 되겠습니까? 일국의 국사가 어제는 옳았던 것이 오늘 잘못된 것이 되고, 한 사람이 아침에 간신이었다가 저녁에는 충신이 된다면, 장주(莊周)의 “그 누구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 우언(寓言)이 아닐 것입니다.

 

! 지난 백세(百歲)와 맞이할 천세(千歲)에 분명 명과 실을 바로잡을 사람이 있을 것이나, 오늘 이 세상에서 실에 의거하여 명을 바로잡을 분은 전하가 아니고 또 누구이겠습니까?

 

상소문 끝에 다시 한번 간절히 당쟁의 폐해를 언급하였다. 상소문이 임금께 바쳐지고 며칠 동안 아무런 분부가 없자, 조정의 신하들은 상소문의 말이 무엄하다고 성토하며 문제가 되는 말들을 가려 뽑아 임금께 아뢰었다. 지평(持平) 이의천(李倚天)이 준엄하게 벌 줄 것을 주청하자, 그동안 역임하였던 관직의 사판(仕版)을 모두 삭제하라 명하시더니 이내 종성(鍾城)으로 유배보내라 명하셨다. 그러자 도성과 영남의 사대부는 누구 할 것 없이 저마다 돈과 베를 갹출하여 노자에 보태도록 하였고 그 중에는 공을 가리켜 ‘영원토록 우러러 볼 어른’이라 칭하는 이도 있었다. 종성은 국토의 최북단으로 거리가 3천리나 되었다. 당시 공의 나이가 70이 가까운데다 날씨 또한 혹한이므로 달포나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공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며, 날마다 『주역(周易)』의 괘() 하나씩을 택해 그 의미를 탐구하고 간혹 사람들과 시를 지어 읊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또 다시 병조참의(兵曹參議)와 참지(參知)가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마침내 낙동강 상류의 높고 가파른 곳에 집 한 채를 지어 “창주정사(滄洲精舍)”라는 편액을 걸고 시()와 서()를 지어 자신의 의중을 표현하였다. 원근에서 찾아와 배우기를 청하는 이들에게는 그 재질에 따라 학문을 이루게 하였다. 그곳에 5~6년간 거처한 다음 공은 그곳이 너무 높다 하여 다시 소라동(召羅洞) 문밖 암석 위에 ‘사미당(四未堂)’의 목재들을 뜯어다가 옮겨 놓았다. 공이 북쪽으로 귀양 갔을 때가 마침 정미년·정미월·정미일·정미시였기에 자제들에게 일러 사미당을 짓게 하였던 것이다. 실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군자의 도 네 가지 중에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를 취하여 자신의 과실을 반성하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원래의 사미당이 시끄러운 세상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이곳으로 옮겨와서는 그 대청을 ‘면가헌(眄柯軒)’이라 이름하고, 매일 그곳에서 소요하며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고, 게으름이 일면 지팡이를 짚고 나서 흐르는 강물의 위쪽과 아래쪽을 오르내릴 뿐 다시는 세상 일에 뜻을 두지 않았다.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1658~1737)

『옥천집(玉川集)』




옥천 조덕린(玉川 趙德隣) 묘소

안동시 풍산읍 신양3리(옷치) 산52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 산 112-1

大關嶺(대관령)

關嶺參天東壓海(관령참천동압해) 하늘 높이 솟아 동해를 압도하는 대관령

登臨準擬豁昏矇(등임준의활혼몽) 올라가면 흐린 기운 활짝 개인길 바랐다네.

上方雲鎖渾迷觸(상방운쇄혼미촉) 위쪽은 운무에 막혀 온통 혼미해 보이거늘

穿出空濛寒雨中(천출공몽한우중) 찬 빗속에 어렴풋이 뚫고 나와 있구나.



四未堂記

余謫居鍾城之三年。其年爲丁未。其年之六月。爲丁未。其月之二十二日。爲丁未。其日之未時。亦爲丁未。 得若日凡營作者無忌。而陰陽家尙之。以爲難遇。余時讀中庸。至孔子之言。君子之道四。某未能一焉。爲之廢書而歎曰。聖人人倫之至。而尙云未也。吾輩當如何。適會逢此日時。念欲作一窩室居之。扁之曰四未。而罪謫之人。構巢自安。亦不宜爾。貽書三千里。屬家兒。趁此日時。作四架堂于家後。竢其成。以四未名之。以寓遠懷而已。罪重年至。曷云能來。其年之七月。過蒙天恩。扶舁南還。吾堂適成。日臥起其中。顧名思義。雖不能至窃庶幾焉。其敢曰聖人之所不能而吾能之耶。亦豈諉曰聖人之所不能。而吾安之耶。嗚 呼聖人之德生知安行。不待思勉而泛應曲酬。合同而化。其能未能。固不暇言。則姑設此以爲敎爾。聖人豈眞有所不能也哉。雖然。聖人之心。純亦不已。無射亦保。未嘗遽自足也。故雖能而不自以爲能。雖謙而不自知爲謙。非若他人之不能而曰能。而苟焉以自恕也。且君臣也父子也昆弟也朋友之交也四者。根於性而具於心。夫豈待交相求而後。盡其道哉。然責人則明。恕己則昏。夫人之常情。所求乎人。反求諸身。取譬之能近。而於是焉以人之鵠爲己之鵠。絜彼之矩爲我之矩。則雖聖人不爲有餘。而常人不爲不足。 此豈非徹上徹下之道。而合內外兼人己而一之者哉。或曰四者。日接於身。其則不遠。卽是而求之已耳。不四未無非下工之日。微斯堂無非下工之所。直俟日時之偶合。作堂而名之而記之。子之於斯道。有待耶無待耶。余笑曰。果也。吾何待於是。人之生也。日爲大化所驅。不容少頃停泊。忽然有所撞著。醒然覺悟。則或銘之盤盂。或名之堂室。視爲監戒。以著毋忘。雖聖人亦有然者。吾儕小人。敢忘斯戒。今吾之名吾堂。若做多小安排。誠如子之言。然余最不肖。於四者。一無猶人。而况事君無狀。自取禍。謫旣往之愆。不可追 補。方來之善猶或可勉。非曰能之。要之死日。繼自今。責之于身。盡之于心。則盤盂之戒。反爲兔蹄。四未之名。徒歸蜩甲矣。然顧余老洫近死。莫使復陽。則惟時若日。足可愛惜。假之時日。庶可矯警。吾以名吾堂。或者唯唯而退。遂書以爲記。



사미정기(四未亭記)찬 옥천 조덕린(趙德鄰)

내가 종성(鐘城 : 함경북도 국경지역의 고을 이름)에 유배된 지 3년이 되는 그 해는 정미년(丁未年)이다. 그 해의 6월이 정미월(丁未月)이며 그 달의 22일이 정미일(丁未日)이고 그 날의 미시(未時 : 오후 한 시부터 세 시)가 역시 정미시(丁未時)이다. 음양가들은 이 날을 만나 집을 지으면 꺼릴 것이 없다고 하며 좋게 여기는데, 이런 날은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는 마침 그 때에 『중용(中庸)』을 읽다가 “군자의 도에 네 가지가 있으나 나는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다”는 공자(孔子)의 말씀에 이르러 책을 덮고 탄식하며 생각해보았다. 성인(聖人)께서는 인간의 도리를 모두 깨우쳤으면서도 여전히 모자라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렇게 좋은 때를 만나 작은 집 한 칸을 지어놓고 ‘사미’(四未)라고 이름을 지으려 하였으나 죄 짓고 귀양살이를 하는 몸으로 집을 지어 편안히 지내는 것 또한 마땅치 않았다. 이에 멀리 있는 아들에게 편지로 부탁하여 그 날 그 시간에 맞추어 집 뒤에 네 칸 집을 짓게 하고, 완공될 무렵에 ‘사미’라고 이름 지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죄는 무겁고 나이는 많은데 과연 돌아가 그 집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해 7월에 과분한 성은을 입어 가마에 의지해서 남쪽 고향집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집이 완성되어서 날마다 이곳에 기거하며 이름에 담긴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군자의 도를 모두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히 공자도 스스로 잘하지 못하다 하신 것을 내가 어찌 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인도 못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겠느냐고 핑계대면서 어찌 편안하게 살 수 있겠는가.


아! 성인이란 태어날 때부터 알고 편안히 행할(生知安行) 수 있는 분이다. 애써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 생각과 행동이 모두 이치에 맞으니, 굳이 ‘잘할 수 있다’ ‘잘하지 못한다’를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공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다만 이를 통해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일 뿐이다. 성인이 어찌 진정으로 ‘잘할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인가.


성인은 순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미워함이 없고 편안하지만 일찍이 스스로 만족해 하신 적이 없다. 비록 잘하지만 스스로 잘못한다고 여기고 비록 이렇게 겸손하지만 자신이 겸손한 줄을 모르셨으니, 다른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면서도 잘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만 후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또한 군자가 잘한다고 하는 군신·부자·형제·친구 사이의 처신, 즉 각각의 관계에서 남에게 책망하는 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반성하는 일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에 원래 다 갖춰져 있는 것이다. 어찌 각각의 관계 속에서 서로 책망하여야 그 도를 다한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남을 책망하는 데는 밝고 그것을 자신에게 미루어 보는 데는 어두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남을 책망하는 내용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표적으로 삼는 것이 바로 나의 표적이며 저 사람을 잰 척도가 나를 재는 척도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록 성인이라도 남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보통사람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보편적인 도가 아니며, 안과 밖, 남과 나를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내게 말하였다. “군신·부자·형제·친구, 이 네 가지는 날마다 접하는 것으로서 그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원칙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상황 속에서 구하면 될 따름이네. 사미(四未)가 아니라고 해서 공부할 날이 없는 것이 아니며 이 집이 없다고 해서 공부할 곳이 없는 것이 아니거늘 정미년이니 정미월이니 하는 때가 우연히 합치되기를 기다렸다가 당(堂)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글을 지었으니 그대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나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렇군. 내 어찌 뭔가를 기대하겠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날마다 시간의 흐름에 쫓겨 잠시도 멈춰 반성할 틈이 없네. 그러다가 홀연히 어떤 계기가 있어 깨달음이 있으면 대야나 그릇에 문구를 새기거나 건물에 이름을 붙이니 틈틈이 볼 때마다 경계로 삼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네. 공자와 같은 성인도 그랬던 적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와 같은 소인이 감히 경계할 바를 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내가 이 집의 이름을 붙이면서 날짜를 맞추고 그에 따라 이름을 짓는 등 약간 인위적인 조작을 한 건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네. 그러나 나는 정말 못난 사람이라 이 네 가지에서 하나도 남만큼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데다가 임금을 섬기면서도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여 귀양을 갔다네.


이왕 저지른 잘못이야 되돌릴 수 없으나 앞으로 잘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일세. 잘 한다고 하지 말고 죽는 날까지 이제부터 계속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한다면 대야와 그릇에 새긴 경계의 말이 도리어 쓸모없어지고 ‘사미’라는 이름도 한갓 매미껍질처럼 의미 없게 되어버릴 것이네.


그러나 다만 나는 늙어 죽을 날이 가깝고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없으니, 한 시간이 하루같이 아까울 뿐이네. 시간을 좀 더 빌릴 수만 있다면 아마도 잘못을 고치고 경계할 수 있을 터인데. 이것이 내가 이 집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일세.”

이 이야기를 하니 그 사람은 “그렇지. 그렇지.” 하고 물러갔다. 드디어 이 내용을 써서 기문으로 삼는다.



▣효성스런 개(孝狗行)▣

개가 효도한 것으로 이름이 되었다고

손님으로 온 이가 내게 전해 주었네

선성(宣城) 땅에 개 한 마리 있었는데

새끼가 나자 서로 애끼며 불쌍히 여기었지

새끼가 저 혼자 먹을 만하게 되자

주인집에서 밥을 주어 길렀지

밥을 얻으면 혼자 먹지 않고

돌아보며 짖어대는 것이 서로 부르는 것만 같네

어미가 와서는 먹고 반을 남기면

새끼가 와서 비로소 그 반을 먹는다네

서로 친애함이 물건도 역시 그러하거니

누가 사랑하라고 시켜서이겠는가

서로 사양함이 이처럼 예와 같고

서로 분별함이 이처럼 의롭다네

사나운 범이 어찌도 어질지 않던지

하룻밤새 그 어미를 물어갔다네

잃어버린 어미를 어디 가서 찾으리오?

제 집을 맴돌다 내딛더니 냄새를 맡더니

산에 올라 숲속으로 내려가

두견새처럼 부르짖었다네

이때 마침 호랑이를 만나

스스로 죽기를 달게 여기고 싸우러 나갔네

먹지도 않은 소리가 처량하였으나

죽기를 결심하여 몸이 따라죽었네

아, 애닲거니 진실로 기이한 일로